[기고] 孤獨死 ⑤- 그, 서역[西域] 삼만리[三萬里]

당현증 … 전 부천시의원

장재욱 기자 | 입력 : 2023/05/21 [22:34]

▲    당현증 전시의원 

시인 서정주는 귀촉도(歸蜀途)라는 시에서,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三萬里)./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三萬里). (중략) 라고 죽음을 노래하였다. 파촉(巴蜀)은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던 옛 촉나라 땅을 일컫는 말이며, 여기서는 '서역'과 함께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죽음의 세계를 말한다. 예로부터 두견새는 슬픔의 상징으로 우리 민족과 함께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새이다. 뻐꾹새 울음소리에 오랜 인연들을 돌아보며 참된 자아와 정체성으로 이어나감이 사연[社緣]의 지혜라는 생각을 문득 떠올려 본다.

 

사회적 타살을 고독사로 간주하는 지금은 가족 관계를 넘어 사회관계망의 약화와 사회 구성원들의 무관심 속에 날로 증가하고 있다. 가족관계의 망가짐은 경제적 이해관계의 개입이 깊을수록 심할 수 있다. 생존의 문제이거나 이기심의 발로이다. 가족이 남인 이웃만 못하다는 항간의 이야기는 빈말이 아니다. 사회 관계망의 약화는 능력위주의 치열한 경쟁원리가 빚은 물신주의 표징이다. 사회적 낙오가 능동적 고립과 무연[無緣]의 자초가 되는 이유이다.

 

앞으로의 고독사는, 존엄한 죽음이 되기 위해 공적 부조가 필요하고 더욱 절실해질 것이라 예상된다. 최근 보도에서의 고독한 죽음에 앞서 스스로 장례비를 남기고 이승을 하직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지 않은가. 무연[無緣]이거나 연고를 남기지 않는 고립의 능동적 하직이다. 스스로 가는 저 먼 서역 길의 비용을 생전에 스스로 준비하는 심정은 비참과 참담 모두를 넘어선 그 무엇일까.

 

정부가 서둘러 주변과 단절된 채 임종을 맞지 않도록 빠르게 발견하고 지원하겠다는 고독사 예방 기본 계획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아야 하고, 사후약방문이 될까 심히 저어되는 느낌은 또 왜일까. 아마도 사회적 갈등과 괴리 속에 인간성의 상실과 물신주의 경쟁이 불러온 안타까운 사회적 현상으로 본다면 지나친 편견일는지.

 

2021년 우리나라 고독사 수가 3,378 건이라는 발표의 정확한 수치가 믿기 어려운 이유는, 실태조사라는 명목 하에 신고 되거나 확인으로 드러난 수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은 고독사의 판정 시스템의 작동이 엄격하고 그만큼 체계화되어 있어 신뢰감을 준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강제적 단절이 불러온 결과는, 개인의 고립과 고독을 심화시킨 관계망의 약화다. 무연의 능동화가 강제로 작용한 안타까운 잔재다.

 

정부가 고독사 예방을 위한 추진전략으로 고독사 위험군을 발굴하고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해 연결을 마련하고, 생애주기별 서비스의 연계와 지원을 강화한다고 지극히 사적인 죽음의 사정이나 정황을 파악하고 예방할 수 있을까. 고독사 위험군 수가 1525천 명이라는 정부의 수치도 그렇지만 국가가 토탈 서비스를 하려는 발상과 예방 계획도 행정 편의주의 같아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는 주된 이유가 경제적인 궁핍이라 해도, 고독사의 이유를 면밀히 살펴야할 이유는 오히려 사회분위기나 풍토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AI 등의 첨단 기기가 발달해도 죽음을 방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죽음이 탄생과 함께 홀로 가는 서역 만리 길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존엄한 죽음을 위한 대책 마련이 더욱 요긴하고 필요한 제도는 아닐는지, 혼자만의 가혹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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