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입하[立夏]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다. 때문인지 더운 기운이 그득하다. 부쩍 가로수 나뭇잎이 무성해 보인다. 옛 기록에는 이즈음 개구리가 짝을 찾아 울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못 자리 벼가 자라고, 보리도 익기 시작하여 결실을 맺는 시절이다. 어린 쑥으로 쑥버무리를 먹은 기억은 아스라하다.
곡우[穀雨] 전에 첫물인 우전차[雨前茶]는 입하와 관련이 깊다. ‘두물머리’로 일컬어지기도 하고, 입하 전후에 수확한 차를 말하기도 한다. 흔히 곡우 전의 첫 번째 차를 최고로 치지만, 다성[茶聖] 초의선사[艸衣禪師]는 두물머리 차를 더 우수하다고 평했다고 전한다.
개구리 울음은 청정한 무논의 표상이기도 하다.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은 자연이 인간에게 베푼 은혜로운 토양이다. 입하를 통해 오래 된 자연녹지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자연의 함성이다. 올 입하에, 내가 살던 그린벨트는 정부의 강제수용으로 개구리도 자연도 모두 타살로 영면[永眠]에 들게 되었다.
가끔 불면[不眠]의 밤에는 개구리 꿈으로 뒤척인다. 꿈속에 개구리는, 소망을 위해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고 하는데, 꿈일 뿐인 것 같아 못내 아쉽다. 나를 따르는 개구리 꿈은,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는데, 이는 더욱 허망할 뿐이다. 중학교 시절 집으로 가던 늦은 저녁, 이즈음엔 달빛 아래 논에서 목 놓아 울던 개구리 울음이 한없이 정겨웠다.
터전을 잃는다는 건 상실[喪失]일 터인데, 꿈에서 보이는 건 불편함이고 때로는 불면[不面]의 반증일 것이다.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음에 기억을 잡고 있다는 건 괴로움의 가중일 터. 분명 해몽에도, 개구리의 합창[合唱]은 억울한 누명에 휩싸일 수 있다니 심사는 자못 불쾌해질 수밖에.
연인이나 배우자 간의 의견 충돌로 멀어지게 된다는, ‘개구리 한 쌍이 울고 있는 꿈’이라 해도, 조용히 견뎌야 하는 지금은 분명 비정상인 시절 같아 꿈에서 깨어보면 더욱 참담하다.
그 때, 달은 밝았고 논 물가에 개구리들은 목청이 높았는데,
나그네가 돌을 던져 개구리들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네.
어두운 꿈속 개구리들은 모두 모여 합창으로 소리가 높은데,
어쩌란 말인가, 꿈은 깊어만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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